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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소식] 손현순 교수, 약사공론 시론 - 약사면허증이 부끄럽지 않게

작성자
pharmacy
작성일
2021-06-10 15:51
조회
3448
누구나 좋은 사람이고 싶고 또 좋은 약사이고자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그냥 되는 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살 수는 없는 일. 어떤 게 좋은 사람이고 좋은 약사인지 계속 고민하고 조정해 가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스스로의 노력, 그것이 그 사람의 품격이라 생각한다.

약사면허신고제가 시행되었다. 나의 약사면허를 가지고 타인을 대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정말 약사다운 약사가 되기로 마음먹을 것이다. 약사다움이 무언지 성찰하고 배우고 실천하며 약사면허증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최근 읽은 자료 중, 우리가 어떤 약사로 살지, 최소한 어떤 약사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의 끈과 닿아있는 내용을 발견해 여기에 소개하려 한다. 고서를 직접 해독한 것은 아니고 백과사전과 다른 사람들의 설명을 토대로 했다. 별로 건강하지 못해서 의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조선시대 세조가 쓴 ‘의약론(醫藥論)’에 등장하는 의원(醫員)의 9가지 유형에 대한 것이다. 현 의료체계와 의약분업 상황을 고려할 때 1464년의 기록이 생경할 수 있지만, 의사나 약사 같은 의료전문직의 소양과 성품과 태도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오백여년의 시차를 뛰어넘는다. 단, 의원이라는 표현은 약사로 바꿔 읽으면 좋겠다.

의원(의사)의 첫 번째 유형은 무심지의(無心之醫)로, 무심한 경지에 이르러 병이 없게 하는 의원. 의술도 필요 없을 만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의원이라서 의원 중 최고란다. 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상을 살고 의료가 거대산업이 된 지금은, 병도 없고 의술도 필요 없게 하는 의원을 글쎄, 그다지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고, 아무튼 현실적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두 번째 심의(心醫)는 환자의 마음을 편안케 하는 의원. 마음이 편하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나,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라는 이 시대 인식과 다르지 않다. 현실성 없는 무심지의를 빼고 나면 심의가 최고의 의원인 셈이다. 좋은 의사는 질병을 다루지만 더 좋은 의사는 질병을 가진 환자를 돌보는 것이라 하고, 이제 질병만 보지 말고 질병을 가진 환자를 보라며 의료인의 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최근의 의료계 동향이 완전 새로운 것도 아닌 듯하다.

식의(食醫)는 환자 상태를 보고 입에 맞는 음식을 잘 먹게 하여 몸을 챙기는 의원. 사실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기는 건강문제를 해결할 때 먹는 것의 중요성을 꼽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던 게다.

약의(藥醫)는 약 먹기만 권하는 의원이고, 혼의(昏醫)는 당황해서 무슨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도 못하는 의원, 광의(狂醫)는 환자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약과 침을 함부로 쓰는 의원이다. 망의(妄醫)는 고칠 수 없는 상태의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함부로 나서고 약을 쓰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르며 처방에 의심도 없는 의원이다. 사의(詐醫)는 의원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의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릇된 행동을 하고 의원입네 행세하는 의원, 살의(殺醫)는 의술에 대해 아는 건 많지만 세상이치를 잘 모르고 환자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도 없으며 그저 자신만 옳다고 여기고 남을 이기려는 고집만 세서 의리에 합당하지 않은 짓을 하는 의원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의원의 행태를 이렇듯 명쾌하게 설명했다니 놀랍다.

게다가 명의로 알려진 사람 중에 사람 잡는 의원이 있다며 심의(心醫)와 살의(殺醫)간 간극이 그리 넓은 것도 아니라는 대목은, 뜨끔하다. 그리고 도덕심과 의술 능력 둘 다 부족한 의원은 가장 낮은 등급의 의원이고, 의술능력이 부족한 의원보다 도덕심이 없는 의원을 더 형편없는 의원이라 평가하였다니, 최근 약사윤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교육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 하에 새로 집필을 시작한 약사윤리 교재 안에 이런 철학들을 잘 담아서 앞으로 약사의 등급을 높이는 데 활용되기를 바란다.

현대 서양의학의 틀 안에서 양약을 배웠고 약사면허를 갖고 약사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백여년 전의 의약론에서 최소한 약의, 혼의, 광의, 망의, 사의, 살의는 되지 말라는 명쾌한 가르침을 읽어낼 줄 알아야겠다. 실력 없고 침착하지 못하고 약을 함부로 쓰고 거짓이 있는 약사를 바람직한 약사라고 할 수 없기에, 약에 대한 의심이 부족하여 약 권하기를 습관처럼 하고 약을 함부로 쓰는 일은 매우 경계해야 할 터.

더없이 아름다운 이 봄, 우리, 내친 김에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심의(心醫) 수준의 약사가 되어봄은 어떠할지?

 

 

출처: https://www.kpanews.co.kr/column/show.asp?page=1&category=E&idx=84698